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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제8회 생태계의 보고 : 돌리네 습지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

(지홍기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기사입력 2026-08-3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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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돌리네습지, 생명이 선택한 특별한 안식처

지금까지 우리는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왜 세계적으로 희귀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람사르습지로 등록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자연의 진정한 가치는 돌과 흙, 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 살아가는 생명들이야말로 습지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문경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해발 270~290m의 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주변은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부에는 물이 고여 독특한 습지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하나의 생태섬(Ecological Island)’과 같다. 넓은 산림이라는 바다속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독립된 환경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립성은 외부 생태계와 다른 독특한 생물군집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굴봉산 돌리네습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매우 높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생태적 오아시스로 평가받고 있다.

 

2.물이 만든 생명의 무대

생태계의 출발점은 언제나 물이다. 물이 존재하는 곳에는 생명이 모이고, 생명이 모이는 곳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된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자연이 만든 거대한 물그릇이다.

 

점토질 불투수층이 물을 저장하고, 강우에 의해 공급된 수분이 장기간 유지되면서 안정적인 습지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수환경은 수생식물과 습지식물의 생육을 가능하게 하며, 다양한 생물들의 번식과 서식을 지원한다.

 

특히 습지는 육상 생태계와 수생 생태계가 만나는 경계 공간(ecotone)이다.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공간이 일반 지역보다 훨씬 높은 생물다양성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 역시 마찬가지다. 산림 생태계와 습지 생태계가 만나면서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이 작은 습지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물과 먹이, 쉼터를 제공하는 거대한 생명의 무대인 셈이다.

 

3.습지 식물들이 만드는 생태계의 기초

어떤 생태계든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존재는 식물이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이용, 유기물을 생산하는 1차 생산자(primary producer)이며, 모든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에는 다양한 습지식물과 수생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식물은 단순히 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공급하고, 토양 유실을 방지하며, 물속 영양염류를 흡수하여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식물군락은 곤충과 양서류, 조류들의 은신처와 번식지가 된다. 한 포기의 식물도 생태계에서는 작은 숲과 같다.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형성함으로써 습지 전체의 생태적 안정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굴봉산 돌리네습지의 풍부한 생물다양성 역시 이러한 식물군락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4.양서류와 곤충, 습지 건강성의 지표

습지 생태계의 건강성을 평가할 때 과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는 생물군이 있다. 바로 양서류와 곤충이다.

 

개구리, 도롱뇽과 같은 양서류는 물과 육지를 모두 이용하는 생물이다. 이들은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양서류가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습지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곤충 역시 마찬가지다. 잠자리와 각종 수서 곤충들은 물속에서 유충 시기를 보내고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닌다. 이들은 먹이사슬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곤충이 있어야 새들이 살아갈 수 있고, 곤충을 먹는 양서류와 파충류도 생존할 수 있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생물들이 복잡한 생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겉으로는 조용한 물웅덩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생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5.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소중한 보금자리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서식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조사 결과 이 지역에는 수달, , 담비, 구렁이, 팔색조를 비롯한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생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생물은 단순히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태계 상위 단계에 위치한 생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먹이사슬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태계는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다. 식물이 있어야 곤충이 살아가고, 곤충이 있어야 양서류와 조류가 살아가며, 이들을 먹는 포식자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멸종위기종의 존재는 곧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다양한 생물들에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자연과 인간이 함께 지켜야 할 생명의 오아시스

필자는 평생 물을 연구해 왔지만, 굴봉산 돌리네 습지를 찾을 때마다 물보다 먼저 생명에 눈길이 간다.

이곳은 단순히 지질학적으로 희귀한 공간이 아니다. 수만 년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생태적 공동체이다. 특히 감동적인 점은 이곳 생명들의 적응력이다.

 

산 정상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균형을 이루어 왔다. 인간 사회가 경쟁을 강조할 때, 자연은 공존의 가치를 보여준다.

 

습지의 식물과 곤충, 양서류와 조류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망이 바로 생태계의 본질이다.

 

람사르습지 등록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우리는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생명들의 삶터로 존중해야 한다. 보전 없는 이용은 결국 파괴로 이어진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가까이에서 배우되,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 즉 자연과의 지혜로운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오늘도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생명의 다양성이야말로 자연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이며, 그 힘을 지켜내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음 회에서는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수행하는 물 저장, 수질 정화, 탄소 흡수 등의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s)에 대해 살펴보며, 왜 습지가 인간 사회에도 필수적인 존재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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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일 기자

이성일 기자 (sllee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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