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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제7회 국제적 위상 : 람사르습지 등록의 의미

(지 홍 기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기사입력 2026-08-2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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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가의 보물에서 세계의 자산으로

2017년 문경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국가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지역사회는 큰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오랫동안 산속에 숨겨져 있던 자연유산이 비로소 국가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국가 지정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국가가 인정한 가치는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가? 문경의 돌리네습지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평가받을 만한 충분한 학술적·생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를 향하게 만들었다.

 

그 목표가 바로 람사르습지(Ramsar Wetland) 등록이었다. 람사르협약은 1971년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으로,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하게 이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늘날 람사르습지 등록은 단순한 명예의 상징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자연유산의 품질 보증서와도 같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문경의 자랑을 넘어,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2.국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과학적 검증

람사르습지 등록은 결코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특히 습지의 희소성, 대표성, 생물다양성, 생태계 기능, 학술적 가치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된다. 굴봉산 돌리네습지가 람사르 등록을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수행해야 했던 일은 기존 연구자료를 국제적 기준에 맞게 재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지질학적으로는 카르스트 지형의 형성과정을 규명하고, 돌리네가 어떻게 습지로 발전하였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수문학적으로는 산 정상부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습지가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입증해야 했다. 생태학적으로는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 현황과 생태계 안정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해야 했다.

 

특히 고지대 돌리네 습지라는 독특한 유형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국제 전문가들에게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과학은 감동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람사르 등록 과정은 바로 그러한 과학적 검증의 연속이었다.

 

3.세계적으로 희귀한 고지대 카르스트 습지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희소성에 있다. 세계 곳곳에 카르스트 지형은 존재한다. 중국 계림, 베트남 하롱베이, 크로아티아 카르스트 고원 등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카르스트 지형에 형성된 돌리네가 습지로 발전하고, 그것도 산 정상부에서 수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일반적인 돌리네는 배수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이 장기간 머물지 못한다. 하지만 굴봉산 돌리네는 테라로사(Terra Rossa)라 불리는 점토질 풍화토가 두껍게 축적되면서 자연적인 차수층을 형성했다.

 

그 결과 산 정상부에서도 물이 유지될 수 있었고, 독특한 습지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학술적으로 볼 때 이는 지질학, 수문학, 생태학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매우 드문 사례다. 바로 이러한 독창성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람사르 등록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이 됐다.
 


4.생물다양성이 증명한 생태적 가치

람사르협약은 단순히 특이한 지형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 공간이 얼마나 풍부한 생명을 품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놀라운 생물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

 

습지와 산림이 결합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식물군락이 형성돼 있으며, 곤충,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습지는 수많은 생물들의 번식지와 서식처 역할을 수행한다.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개구리의 산란장이 되고, 습지식물 군락은 곤충과 조류의 중요한 서식지가 된다. 생태계는 서로 연결돼 있다. 물이 유지되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고, 식물이 자라기 때문에 동물이 살아간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이러한 생태적 연결성이 잘 보전된 공간이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결국 람사르 등록은 단순히 희귀한 지형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기도 하다.

 

5.2024, 람사르습지 등록의 의미

2024년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은 문경뿐 아니라 경상북도 전체에도 큰 의미를 남겼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성과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굴봉산 돌리네 습지를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 중요한 자연유산으로 공식 인정했다는 뜻이다.

 

수억 년 전 바다에서 시작된 석회암의 역사, 수만 년 동안 이어진 용식 작용,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생태계가 세계적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것이다. 필자에게도 이 순간은 매우 감격스러웠다.

 

평생 물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그리고 고향 문경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연의 가치를 국제사회와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람사르 등록은 문경이라는 지역의 이름을 세계 습지 보전지도 위에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6.세계적 유산에 걸맞은 우리의 책임

그러나 국제적 인정은 동시에 더 큰 책임을 의미한다. 람사르협약의 핵심 정신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현명한 이용(Wise Use)’에 있다. , 습지를 인간의 손길에서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건강성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하게 활용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굴봉산 돌리네 습지를 연구와 교육, 생태관광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은 자연 보전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이제 굴봉산 돌리네습지는 문경만의 자산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자산이며, 나아가 국제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이다.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 온 이 소중한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일, 그것이 람사르 등록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이제 세계와 소통하는 문경의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이후 굴봉산 돌리네 습지가 지닌 교육적·관광적 활용 가능성과 지역 발전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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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일 기자

이성일 기자 (sllee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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