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멈춰 선 간이역은 단순한 폐건물이 아니다. 한 시대의 생활사와 지역 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문경에는 철도 역사의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는 가은역(제304호)과 불정역(제326호)이 있다. 두 역은 대한민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폐역의 위기를 딛고 보존과 활용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점촌 근대 산업의 한 축을 떠받쳤던 주평역은 점차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1956년 전후 국가 재건과 석탄 수송을 위해 문경선(점촌~문경)이 개통됐다. 노선을 따라 여러 역이 들어섰다. 신기동에 자리 잡은 주평역은 일반적인 시골 여객역과 달랐다. 역사 인근 시멘트 공장으로 연결되는 전용선이 분기하는 물류 거점이었다.
주평역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시멘트 공장을 빼놓을 수 없다. 1957년 운크라(UNKRA·유엔한국재건단)의 자금 지원으로 대한양회 문경공장이 건립됐다. 이후 쌍용양회에 인수됐다. 이 공장은 전후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주평역은 공장의 물류를 떠받치는 대동맥이었다. 불정동과 가은, 문경 일대 탄광에서 채굴한 무연탄이 시멘트 생산 연료로 쓰이기 위해 주평역으로 모였다. 공장에서 생산한 시멘트 포대는 화물열차에 실려 전국 건설 현장으로 운송됐다.
1970~80년대 전성기에는 주평역 주변이 문경의 대표적인 산업 현장으로 꼽혔다. 플랫폼에는 석탄 가루와 시멘트 분진이 흩날렸다. 하역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짐을 나르고 실었다. 점촌장으로 향하는 상인들도 역을 오갔다. 점촌 시내로 통학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평역은 밤낮없이 사람과 화물로 붐볐다. 역에서 울리는 기적 소리와 화물열차의 굉음은 광공업 도시 점촌의 성장과 함께했다. 철도는 당시 점촌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주평역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주변 광산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시멘트 수송도 철도에서 도로 중심으로 바뀌었다. 주평역의 역할은 빠르게 줄었다.
1995년에는 여객 취급이 전면 중단됐다. 이후 쌍용양회 문경공장도 가동을 멈췄다. 화물열차의 진입도 끊겼다. 지금 주평역에는 낡은 승강장과 붉게 녹슨 철길이 남아 있다. 한때 산업 현장의 중심이었던 역의 흔적이다.
가은역과 불정역이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듯 주평역도 보존 가치가 있는 근대 산업유산이다. 특히 점촌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문경시는 가동을 멈춘 옛 쌍용양회 문경공장부지를 매입해 수소연료전지 발전과 도시재생 융복합 단지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공장의 물류를 담당했던 주평역과 전용 철교, 철길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평역을 문경의 근대 산업사를 보여주는 ‘산업철도 아카이브 전시관’으로 보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쌍용양회로 이어지던 전용 철로를 산업유산 탐방로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과거 점촌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주평역의 철길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 때다. 멈춰버린 점촌 산업의 흔적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