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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10절. 1924년 철도가 재편한 지역의 운명: 점촌역 개통과 상권의 대이동

엄원식 문경시 전, 학예연구관

기사입력 2026-08-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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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다니기 전 문경에서 한양까지는 장정이 걸어서 편도 6일이 걸렸고, 왕복과 체류 기간을 합치면 족히 한 달이 걸리는 먼 여정이었다.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핵심 구간이었던 문경은 1905년 경부선 철도 부설 당시 조령의 험준한 지형 문제로 노선에서 배제됐다. 그 결과 철도역이 들어선 김천이 경북 서북부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도보와 우마차에 의존하던 전통적 교통 체계가 철도라는 대량 수송 수단으로 대체되면서 물류와 자본의 집중을 목격한 지역사회는 철도 유치에 사활을 걸게 됐다.
 


1919년 설립된 조선산업철도(후에 조선철도로 합병)가 김천과 안동을 잇는 경북선 부설에 착수하면서 문경 지역에도 중대한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당초 경북선 1기 계획선의 종착역은 문경이 아닌 상주군 함창면으로 예정돼 있었다. 영강변에서 옹기와 기와를 굽던 수십 호 규모의 작은 마을 점촌리에는 철도역 설치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1924년 하반기 당시 문경군수 박정순과 호서남면 유지들은 1기 노선의 종점이 갖는 막대한 물류 독점의 이점을 간파하고 점촌역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종점역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함창면 주민들은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벌였다. 반면 문경 측은 점촌의 넓은 평야가 향후 시가지와 상권 확장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워 당국을 설득했다.
 


치열한 갈등 끝에 점촌리가 1기 노선의 종점으로 확정됐고, 19241225일 점촌역이 공식 영업을 개시했다. 당시 양측의 대립이 팽팽해 개통식마저 함창과 점촌에서 각각 따로 거행될 정도였다.

 

점촌역 개통의 파급력은 객관적인 통계로 명확히 드러난다. 19282기 노선이 예천까지 연장되기 전까지 점촌역은 아직 철도가 닿지 않은 예천, 영주, 봉화 등 경북 북부 지역의 화물을 사실상 독점했다.

 

1927년 상반기 점촌역의 발송 화물은 1192톤으로 함창역의 3,722톤을 세 배 가까이 앞섰다. 도착 화물 역시 12,502톤으로 함창역의 2,746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격차를 보였다. 종점역의 이점을 선점한 점촌역은 단숨에 경북 북부 물류의 최대 집산지로 뛰어올랐다.

 

점촌역의 개통은 단순한 상업과 여객의 발달에 머물지 않았다. 훗날 문경을 대한민국 근대 산업의 핵심 기지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토대가 바로 이 철도망이었다.
 


1930년대 이후 가은의 은성광업소를 비롯한 지역 내 수많은 탄광에서 채굴된 막대한 양의 석탄이 점촌역으로 집결해 전국으로 수송됐다. 이어 1950년대 신기동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인 대한양회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 역시 점촌역이라는 막강한 철도 물류망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수십 호에 불과했던 점촌리가 인구 1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광공업 도시로 폭발적인 팽창을 이룬 근저에는 철도라는 강력한 산업 동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물류와 산업의 집중은 인구와 행정의 중심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점촌리가 속한 호서남면의 인구는 철도 노동자와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급증한 반면, 조선시대 이래 군의 전통적 중심지였던 문경면의 인구는 정체 및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철도망에서 소외된 원도심의 쇠퇴와 철도역을 품은 신흥 도심의 급부상이라는 극명한 대비가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상권의 이동 역시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1924년 당시 점촌 번영회는 상주(2·7), 함창(1·6), 산양(5·10) 등 인근 장시와의 상권 충돌을 피하고자 처음에는 점촌 장날을 4일과 9일로 내정해 추진했다.

 

그러나 주변 지역의 거센 반발과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유곡장의 흡수 등 치열한 지역 간 진통을 겪으면서 최종적으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3일과 8일의 점촌장으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상권의 이동에 이어 1925년에는 호서남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마저 유곡리에서 점촌리로 잇따라 이전하면서 지역 행정의 주도권이 점촌으로 완전히 넘어왔음을 보여줬다.

 

1969611일 신축돼 지금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점촌역 건물은 단순한 낡은 역사가 아니다. 한적한 옹기 마을을 상업 및 광공업의 중심지로 팽창시킨 역사의 증거다.
 


1924년 점촌역 개통 이후 정확히 100년의 세월이 흐른 20241130일 과거 조선시대 역원 제도의 중심이었던 마원리에는 중부내륙선 KTX 문경역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100년 전 점촌역이 철도를 통해 지역의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근대화를 이끌었듯 수도권과 1시간 30분대로 연결된 새로운 KTX 철길은 앞으로 문경의 물류와 경제 지형도를 또 한 번 재편하는 새로운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일 기자

이성일 기자 (sllee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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