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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제5회 비교 분석, 테라로사(Terra Rossa)가 만든 기적

(지홍기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문경 굴봉산 돌리네습지 시리즈)

기사입력 2026-08-0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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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가치

어떤 대상의 가치는 비교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산이 높다는 사실도 주변 산들과 비교할 때 실감할 수 있고, 강의 규모도 다른 하천과 견주어 볼 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문경 굴봉산 돌리네습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 습지의 생성 과정과 지질학적 특성, 수문학적 구조를 살펴봤다. 이제 국내외 다양한 돌리네 및 카르스트 지형과 비교해 왜 이곳이 특별한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돌리네 자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석회암 지대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돌리네 내부에 습지가 형성되고,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높은 생물다양성을 보이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바로 이 점에서 문경 돌리네습지의 독보적인 가치가 시작된다.

 

2.국내 카르스트 지형과의 비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는 충청북도 단양 지역을 들 수 있다. 단양군 일대에는 석회암 지대가 넓게 분포하며 수많은 돌리네와 동굴, 함몰지형이 발달해 있다.

 

특히 여천리 일대 돌리네군()은 국내 카르스트 연구의 중요한 현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리네는 강한 배수 기능 때문에 물이 오랜 기간 머물지 못한다.

 

석회암층에는 수많은 균열과 공동(空洞)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강우가 발생하면 물은 곧바로 지하로 스며든다. 결과적으로 돌리네는 형성되지만 습지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반면 문경 굴봉산 돌리네습지는 다르다. 돌리네 지형 위에 습지가 형성됐고, 사계절 안정적인 수량을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배수가 잘되는 카르스트 지형에서 습지가 형성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 국내 다른 카르스트 지형이 지질학적 교과서라면 문경 돌리네습지는 지질학과 생태학이 함께 살아 있는 종합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3.세계의 돌리네와 문경 돌리네습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르스트 지역으로는 중국 계림(桂林), 베트남 하롱베이, 크로아티아 카르스트 고원, 슬로베니아 카르스트 지역 등이 있다.

 

이들 지역에는 수많은 돌리네와 우발라(Uvala), 폴리에(Polje) 등이 발달해 있다. 규모 면에서는 문경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기능이다.

 

대부분의 돌리네는 강우가 내리면 물이 잠시 머문 뒤 빠르게 지하로 배수된다. 카르스트 지형의 본질적 특성이 높은 투수성(permeability)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질학적으로 돌리네는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돌리네 내부에 습지가 형성되고 장기간 유지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람사르협약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람사르습지 가운데 돌리네 또는 우발라 지형에 형성된 습지는 문경을 포함해 6곳에 불과하다.

 

이는 문경 돌리네습지가 국내 유일성을 넘어 세계적 희소성을 지닌 자연유산임을 의미한다.

 

4.테라로사(Terra Rossa)가 만든 기적

문경 돌리네습지의 가장 큰 비밀은 바닥에 형성된 테라로사(Terra Rossa)에 있다.

 

테라로사는 석회암이 오랜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남은 붉은색 점토질 토양이다. 일반적으로 석회암 성분은 용해되지만 점토 성분은 남아 축적된다.

 

굴봉산 돌리네 바닥에는 이러한 테라로사가 오랜 기간 쌓여 천연 불투수층을 형성했다.

 

공학적으로 보면 이는 저수지의 차수막(遮水膜)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덕분에 강우가 지하로 빠르게 침투하지 않고 장기간 저장될 수 있었으며, 산 정상부에서도 습지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를 자연이 수만 년 동안 완성한 친환경 저수지라고 표현하고 싶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수십 년 안에 시설을 만들 수 있지만, 자연은 수만 년 동안 서두르지 않고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완성했다.

 

5.람사르습지 등록이 의미하는 것

문경 돌리네 습지는 2017년 국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24년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인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이는 국내 25번째 람사르습지이자 경상북도 최초의 람사르습지다.

 

람사르 등록은 단순히 경관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질학적 희소성, 생태학적 가치, 생물다양성, 보전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제도다.

 

문경 돌리네습지에는 수달, 담비, , 구렁이, 팔색조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포함해 932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이곳은 단순히 독특한 지형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보고(寶庫).

 

6.문경이 가진 세계적 자연유산

우리는 흔히 세계적 유산이라고 하면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유명한 국립공원을 떠올린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유산은 규모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독창성과 희소성이 더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문경 굴봉산 돌리네 습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곳은 수억 년 전 바다에서 시작된 석회암의 역사와 수만 년 동안 이어진 용식 작용, 생태계의 진화 과정이 한 장소에 응축된 살아 있는 자연박물관이다.

 

지질학자는 이곳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고, 생태학자는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하며, 수문학자는 물순환의 원리를 배운다. 일반 방문객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인지를 깨닫게 된다.

 

문경 돌리네 습지는 단순한 지역 명소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자연유산이며,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다음 회에서는 굴봉산 돌리네 습지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과 생태계 구조를 살펴보며, 왜 이 작은 습지가 생명의 요람이라 불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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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일 기자

이성일 기자 (sllee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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